아바이마을과 갯배 — 실향민이 만든 마을, 손으로 당겨 건너는 배
속초 여행 · 속초항아리물회

속초해변 앞에서 물회집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갯배가 뭐예요?”
배 이야기를 하려면 마을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합니다. 그 배는 관광용으로 만든 게 아니라, 살기 위해 만든 배였거든요.
이 마을은 원래 없던 마을입니다
1951년 1월, 이른바 1·4후퇴 때입니다.
중공군이 밀고 내려오자 국군이 후퇴했고, 함경도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배를 타고, 걸어서, 아이를 업고. 대부분은 며칠이면 돌아갈 줄 알았습니다. 짐을 제대로 챙긴 사람이 거의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러다 1953년에 휴전이 되었습니다. 휴전선이 그어졌고, 고향은 그 선 너머가 되었고, 돌아갈 길이 막혔습니다.
그분들이 모여 산 곳이 지금의 속초시 청호동입니다. 당시에는 속초가 시(市)도 아니었어요. 양양군 속초읍이었습니다.
바다와 호수 사이에 낀 모래톱, 아무도 살지 않던 땅이었습니다. 그 위에 판잣집을 지었습니다. 임시로요. 곧 돌아갈 거니까 임시로.
그 임시가 70년이 넘었습니다.
‘아바이’는 무슨 뜻인가요
**함경도 말로 ‘어르신’, ‘할아버지’**라는 뜻입니다.
함경도에서 온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 자연스럽게 붙은 이름이에요. 누가 지어준 이름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다 굳어진 이름입니다.
이름 자체가 이 마을의 내력인 셈이지요.
갯배 — 엔진이 없는 배
마을은 육지와 붙어 있지 않습니다. 사이에 50m 남짓한 물길이 있어요.
돌아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갯배입니다.
배 위에 서면 쇠줄이 하나 물 위로 뻗어 있습니다. 갈고리로 그 줄을 걸어 손으로 당기면 배가 앞으로 갑니다. 엔진도, 노도, 돛도 없습니다. 사람 힘으로만 갑니다.
건너는 데 3분쯤 걸립니다.
관광객도 갈고리를 잡고 당겨볼 수 있습니다. 말리지 않아요. 오히려 다들 당겨보시라고 권합니다. 그게 이 배를 타는 이유의 절반입니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기도 하고요.
| 항목 | 내용 |
|---|---|
| 요금 (편도) | 어른 500원 · 어린이(초등) 300원 · 자전거·손수레 500원 |
| 운항 시간 | 5 |
| 소요 시간 | 약 3분 (물길 50m 남짓) |
| 정원 | 32명 (운항자 1명 포함) |
| 주소 | 속초시 중앙부두길 39 |
| 문의 | 033-639-2449 |
날씨가 나쁘면 운항이 멈춥니다. 바람이 세거나 파도가 높은 날은 전화로 확인하고 가세요. 헛걸음하시는 분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리고 요금이 500원인 것은 오해하지 마세요. 싸게 해주는 게 아니라 원래 이 배가 관광 시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을 어르신들이 장 보러 갈 때 타는 배입니다.
「가을동화」가 이 마을을 바꿨습니다
2000년에 드라마 「가을동화」가 여기서 촬영됐습니다.
노란 우산을 든 여자 주인공이 갯배를 타고 건너는 장면, 그리고 맞은편 배에서 오빠가 그 모습을 보는 장면. 한국은 물론 일본·중국에서도 크게 히트했고, 그 뒤로 이 마을에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부분이 조금 복잡합니다.
드라마 덕분에 마을이 알려지고 사람이 오는 건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마을이 왜 생겼는지는 뒤로 밀려났습니다. 갯배를 타러 오시는 분들 중에 “여기가 피란민 마을”이라는 걸 아시는 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드라마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둘 다 알고 타시면 배가 다르게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음식
실향민들은 고향 음식을 만들고 싶었는데 재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있는 재료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속초 음식의 절반이 그렇게 생겼어요.
아바이순대
함경도식 순대입니다. 돼지 대창에 찹쌀과 선지, 채소를 채워 쪄냅니다.
흔히 보는 순대보다 훨씬 굵고 든든합니다. 한 접시면 식사가 됩니다. 아바이마을에 전문점이 모여 있습니다.
오징어순대
이건 순전히 속초에서 만들어진 음식입니다.
돼지 창자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항구에 흔하던 오징어의 몸통을 껍데기 삼아 속을 채운 겁니다. 잘라 놓으면 하얀 링 안에 소가 박혀 있어 모양도 예쁘고 맛도 담백합니다.
없어서 만든 음식인데 지금은 속초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저희 가게에서도 냅니다.
함흥냉면
함흥은 함경도의 도시입니다. 감자·고구마 전분으로 뽑은 질긴 면에 매운 양념과 회를 얹어 비벼 먹는 냉면이지요.
속초와 그 위쪽 고성에 함흥냉면집이 유난히 많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속초 음식에는 실향민의 역사가 들어 있습니다. 과장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입니다.
저희가 이 마을과 이어진 방식
저희 속초항아리물회는 매년 두 차례, 아바이마을 어르신 300여 분을 모셔 식사를 대접합니다.
거창한 뜻이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닙니다. 속초 바다로 먹고사는 집이 속초에 뭔가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3층 홀에 상을 차리고, 어르신들이 오시면 한 상씩 내어 드립니다. 그날은 가게가 아주 시끄럽습니다. 좋은 의미로요.
식사하시면서 고향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함경도 어디 출신이라고, 거기서는 이걸 이렇게 먹었다고. 일흔 해가 지나도 그 이야기는 마르지 않습니다.
어떻게 가나요
아바이마을은 속초 시내 바로 옆에 있습니다.
- 갯배로 — 중앙동 선착장에서 3분. 가장 재미있고 가장 짧은 방법입니다
- 버스 — 시내에서 7번·9번을 타면 갯배 선착장 근처까지 갑니다
- 차로 — 다리를 돌아가면 됩니다. 저희 가게(속초해변 앞)에서 약 10분
- 걸어서 — 속초관광수산시장에서 갯배 선착장까지 도보 10분 남짓
동선을 짜신다면 수산시장 → 갯배 → 아바이마을 → 다시 갯배가 자연스럽습니다. 시장에서 닭강정 사서 마을에서 드시는 분들도 많아요.
가시기 전에 알아두시면 좋은 것
- 오래 걸리는 곳이 아닙니다. 마을 골목과 갯배를 합쳐 1시간에서 1시간 반이면 충분합니다
- 큰 볼거리를 기대하고 가면 실망합니다. 여기는 조용한 주택가입니다.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동네예요
- 사진 찍으실 때 한 번만 생각해 주세요. 골목 안쪽은 실제로 어르신들이 사시는 집입니다. 창문과 마당은 피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비 오는 날에도 갯배는 뜹니다. 바람이 문제지 비는 대체로 괜찮습니다. 다만 확인 전화는 하고 가세요
배를 타기 전에
갯배 위에서 줄을 당길 때, 딱 한 번만 이 생각을 해보셨으면 합니다.
70년 전에도 누군가 같은 줄을 당겼습니다. 관광객이 아니라 장 보러 가던 어머니가, 학교 가던 아이가, 그리고 “곧 돌아갈 거야” 하고 이 모래톱에 짐을 푼 함경도 사람들이요.
그분들은 결국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대신 여기에 마을을 만들었고, 음식을 만들었고, 그 음식이 지금 속초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50m짜리 물길이지만, 건너면서 그 생각을 하면 좀 다르게 느껴지실 겁니다.
속초에 오시면 통일전망대도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차로 50분이면 북한 해안선이 맨눈으로 보이는 곳입니다. 아바이마을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거기서 끝납니다.
마을 구경하고 시장 들르셨다가 배가 고파지시면, 바다 앞으로 오세요. 물회 한 그릇 시원하게 말아 드리겠습니다.
